Project Description
깊 은 심 심 함
예술과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와 여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깊은 주의를 가능케 하는 환경은 속도와 과잉주의에 의해 점령당하며 사라져 가고 있다. 대량의 정보와 그것의 동시적 처리, 속도와 재미가 중요한 상황에서 창조적 과정에 필수적인 심심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깊은 심심함을 통한 사색적 삶의 회복은 예술행위에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인간은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 속에 침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는 이제 희미해졌지만 그렇다고 사소함과 장식에 머무르는 것을 받아들이긴 여전히 어렵다. 지금, 예술은 결핍으로 허덕이기 보단 과잉 속에서 질식하기 일보직전이다. 그것은 시대의 구조를 지나치게 받아들인 자명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상품세계의 변화속도와 매커니즘이 우리의 세계와 의식을 재편하고 지배하는 이 시대에서 거리를 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모든 관조적 요소가 제거되고 현란한 세계의 굉음에만 의탁한다면 인간 삶은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끝나고 말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여전히 느린 예술은 유효하다. 그 점이 질주하는 속도의 오늘, 붓을 잡고 있어도 괜찮다는 유일한 위안이다.
현대회화는 존재론적 고투를 담고 있는 인간의 대표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전체는 우리 인식의 지평에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경험의 축적으로 구성된 잠재성의 한 단면들 속에서만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점차 현상 너머의 차원을 엿보고 싶고, 그것을 그리고 싶어 하는 형이상학적 갈망은 표현행위의 필연적인 종착역인 것 같다. 그건 ‘세계’에서 ‘세계들’로 나아가려 하는, ‘존재’로 고착되지 않고 ‘존재들’로 확장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소재나 그것이 지시하는 표상이 아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간혹, 우리 삶에 주어진 장면과 장면 사이의 벌어진 틈 너머로 문득 비치는 세계의 무한한 얼굴을 엿보고 그것을 환상적으로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심연과 깊이를 느끼고 맛보는 것, 그리고 공감을 통해 세계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 김형석 작가노트 –
김 형 석 Kim Hyung Seok
1999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서양화전공 졸업
199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6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갤러리 담 / 서울)
2015 세계의 밤 (갤러리 그림손 / 서울)
2014 세계의 밤 (갤러리 그림손 / 서울)
2013 완벽한 날 (갤러리 그림손 / 서울)
2012 깊은 심심함 (갤러리 고도 / 서울)
2011 Melancholia (갤러리 BD / 분당)
2003 꿈 – 이미지의 두께 (대안공간 풀 / 서울)
2000 아트딱지 (갤러리 마노 / 서울)
1999 이미지의 연옥 (대안공간 풀 / 서울)
1998 가벼운 묵시록 (인더갤러리 / 양평)
1994 문화적 모국어에 대한 단상 (윤갤러리 / 서울)
주요단체전
2014 뉴드로잉전 (문화역 / 서울)
2013 구·체·경 – 힐링 그라운드 (소마미술관 / 서울)
2012 KIAF 2012 (코엑스 홀 A&B / 서울)
2011 한국 미술을 말하다 – 앙가쥬망 50년 (공아트스페이스 / 서울)
2010 Color Chart Seoul 2010 (성균갤러리 / 서울)
2009 Color Therapy (갤러리 눈 / 서울)
2008 Love Actually (그림손갤러리 / 서울)
2007 Open 24 Hours (충무아트갤러리 / 서울)
2006 부산비엔날레 (부산시립미술관 / 부산)
2005 폭식 (인사미술공간 / 서울)
2004 한글다다 (쌈지스페이스 / 서울)
2003 트릭 (동덕아트갤러리 / 서울)
2002 물질과 정신 (국민대, 동국대 갤러리 / 서울)
2001 돌아온 유령 (대안공간 풀 / 서울)
2000 릴레이 릴레이 (인사미술공간 / 서울)
1999 주차장프로젝트 2 (아트선재센터 / 서울)
1998 로고스와 파토스13 (관훈갤러리 / 서울)
1997 Cornucopia (웅전갤러리 / 서울)
1996 립싱크와 에드립 (사디갤러리 / 서울)
1995 비무장지대 (공평아트센터 / 서울)
1994 로고스와 파토스9 (관훈갤러리 / 서울)
1993 뉴폼 93전 (윤갤러리 / 서울)